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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빈곤 글로벌 지도

4-1. 카를로스 1세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의 갈림길이 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과

빈곤한 나라의 길을 가게된 볼리비아, 부유한 나라의 길을 가게된 스페인에 대해 여태 배움

 

포토시에 은광이 발견됐을 때 스페인의 왕은 카를로스 1세였음

빅토리 위고의 희곡,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인 에르난에 나옴

합수부르크 왕인 막시밀리안 1세가 카를로스 1세의 아빠고 

카를로스 1세도 열아홉살때 1519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됨, 카를 5세라고도 불림

신성로마제국은 중세에서 근대까지 이어진 기독교 성향이 강한 유럽국가들의 정치적 연방체

 

 

 

 

카를로스 1세의 사진을 보면 주걱턱임

이 주걱턱이 합수부르크 가의 왕의 유전자를 지녔다는 것의 증명임

 

스페인은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한 1516년 이후 부터는

합수부르크 왕가가 통치하게 되는 거임

 

지금의 벨기에인 프랑드르 지역의 켄트에서 나고 자라서

독어, 프랑스어, 폴란드어를 잘하고

스페인 왕위에 오르고 스페인어도 잘함

 

신하하고 대화할 때는 스페인어

남성과 대화할 때는 프랑스어

말과 대화할 때는 독어

여성과 대화할 때는 이탈리아어를 사용

 

 

친가도 중요한데 외가도 빵빵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콜롬버스에게 지원했던 페르난도왕이랑 이사벨여왕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한테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음

 

 

카를로스 1세 (카를 5세)의 재산 목록

 

여섯살 때 네덜란드를 선물로 물려받음

열여섯살 때 스페인 왕이되면서 외할아버지 페르난도는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의 왕이었음

그리고 나폴리 시칠리아 세르데냐의 이탈리아 영토를 다줌

외할머니 이사벨은 스페인의 지금 마드리드가 있는 카스티야 왕국과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해외 영토 다줌

그리고 카를로스 1세가 왕 재위 중에 코르테스가 멕시코에 있는 아즈텍 제국을 장악하고

피사로가 볼리비아 잉카제국을 정복함 

그래서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에서 나오는 금광 은광 채굴권을 모두 장악함

 

1513년에 발보아가 있는 태평양제도와 필리핀 제도를 발견함

필리핀이라는 이름도 카를로스 1세의 아들이름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임

카를로스는 엄청난 제국을 지배했고

그 전에 로마황제도 그만한 영토, 풍부한 부, 다양한 민족을 거머쥐지는 못햇음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 제국의 창시자였음

 

중상주의와 카를로스 1세

 

 

 

 

해외 식민지가 되게 많았는데, 이때 식민지를 경영하는 목표는 왕실이 부자가 되는 것임

1500년대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았고, 식민제국을 거느리는 건 로마의 식민지처럼 생각하는 거임

이를 전문 용어로 중상주의 정책이라고 함

 

중상주의 정책하면 상업을 중시하는 거라고 느껴지지만 사실 보호무역과 근사함

국가가 부유해지기 위해서 왕실의 부를 증대시키고자 보호무역 입장에서 수입을 통제하고 수출을 증진함

이 때 부는 금과 은의 축적임

 

이를 위해 킨토세를 받고, 어떤 토지에서 뭘 재배하라는 특권, 면허권을 발급함

임대료도 징수해서 이 이익을 모두 왕실의 재정으로 취함

 

금, 은, 다이아몬드, 사탕수수, 담배, 목재 등 모두 수탈

담배 원산지는 아메리카 대륙임. 아메리카 발견 이후 유럽사람들도 담배를 피기 시작함

이 후 식민지를 대상으로 무역 독점 권을 행사함

 

1503년에 세비야에만 무역사무소를 뒀는데

16세기 초에는 이 무역사무소에서 아메리카 전역에서 오는 모든 항해 상업 행위 권한을 가짐

여러 탐험 조직도 여기서 조직함

무역 외에도 배 구매, 이주민 모집, 물자 공수용품도 모두 왕실이 직접 관할하는 무역사무소에서 관리

 

카를로스 1세는 수많은 은을 사치부리고 성당을 짓는데에 씀

더 넓은 영토를 통합해서 카톨릭 기반으로 대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계속 전쟁함

 

이탈리아 패권으로 프랑스랑 전쟁하고, 신교 때문에 독일 제후들과 전쟁하고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유럽진출을 막기위해 전쟁함

그 많은 재산을 값비싼 전쟁자금, 과시적인 기념물 설립, 사치스러운 생활영위, 신교들과의 싸움을 위해 사용

 

카를로스 1세가 죽고 자기 유산을 아들과 동생에게 줌

펠리페 2세에게 스페인을 주고, 동생 카페르디난트 1세에게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을 줌

오스트리아 하면 합수부르크 가의 대표적인 국가,

합수부르크 가가 아들에게 준 합수부르크, 동생한테 준 오스트리아로 나뉨(이게 우리가 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는 계속 카톨릭의 전초부대 이미지로 강대국으로 성장

스페인은 계속해서 이런 부를 중심으로 무적함대, 제국으로 계속 성장하고

오스만튀르크가 쇠퇴하는 틈을 타서 동유럽과 세르비아 발칸반도를 걸쳐 지배권을 행사함

 

카를로스 4세

고야의 카를로스 4세 가족이라는 작품에서 스페인의 쇠퇴 상을 살펴볼 수 있음

고야는 금을 세공하는 도금장이의 아들이라는 미천한 신분에서 궁중화가가 된 사람임

궁중화가가 된 이유는 귀족들의 복장을 화사하게 보이는 바로크 풍의 화려한 색채와 유려한 터치가 돋보여서임

카를로스 4세 가족이 궁중화가로서 마지막 작품임

 

어떤 평론가는 이건 왕족의 초상화가 아닌 복권에 당첨된 빵집 가족같다고 함

 

 

 

 

 

왼쪽에서 두번째 푸른옷을 입은 사람이 카를로스 4세의 아들, 나중에 페르디난도 7세로 왕이 됨

그 옆에 뒷쪽에 고모가 있음. 얼굴에 큰 점이 있는데 더 부각해서 그리고 마귀할멈같이 그림

그 옆에 고개를 돌린 사람은 페르디난도 7세의 약혼녀, 나중에 결혼 안할 수도 있어서 얼굴 가려준 거임

가운데 왕비가 오른팔로 딸을 감싸고 왼손으로 아들 손을 잡고 이씀

그 옆에 왼쪽 다리를 내민 사람이 카를로스 4세임

 

이렇게 열 세명의 왕족을 그렸는데 그 중에 지 얼굴도 있어서 총 14명임 왼쪽 맨 뒤에 있음

 

카를로스 4세를 보면 옷이 화려하고 훈장도 있는데 볼이 빨갛고 멍청해보이고 배불뚝이임

가운데 왕비는 20대 여성에게 어울릴법한 복장인데 얼굴을 천박하고 표독스럽게 그렸다고 함

 

왕과 왕비 사이에 왕자만 있고 뒷부분이 비어있음, 일부로 비웠다고 함

원래 거기에는 마누엘 고도라는 스페인 수상이 있어야 했는데 그리지 않음

그 수상이 왕비와 분륜관계인 애인이라고 함

빨간옷을 입은 어린 왕자와 공주도 카를로스 4세의 애가 아니라 고도이의 애기들이라고 알려짐

 

카를로스 4세는 정치도 무관심하고 멍청하고 사냥만 했다고 함

그래서 왕비가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데, 그 왕비를 휘두른건 수상인 마누엘 고도이였다고 함

 

당시 합스부르크 가의 왕가는 그 왕가 사람들 끼리만 결혼 함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열성유전자가 자꾸 이어져서 멍청해짐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250년간 금과 은을 너무 많이 받고

포토시에서 은이 더이상 나오지 않아서 스페인 제국이 멸명해 버림

1516년 카를로스가 스페인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18세기에는 궁중화가 조차 대놓고 비웃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림

은이 끊기니 바로 쇠퇴함. 자생의 동력을 갖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