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도회사 17세기 초 네덜란드, 영국 등의 후추, 육두구, 비단, 면화 등 동양의 값비싼 상품을 교역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회사 인도,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상대로 하는 무역에 독점권을 부여 받음 회사의 지역 상관은 자국의 식민지 확장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 영국 동인도 회사는 1600년에 탄생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창설했고 위험 공동화와 분산 이에 따른 투자 자본 증가를 모색하기 위해 주식회사 방식을 도입하게 됨 |
콜롬버스가 카리브해 섬에 도착했을 때 콜롬버스와 일행들은 그곳을 인도라고 착각했었음
그 지역을 서인도라고 하고, 그 쪽과 무역하는 회사로 서인도회사도 있음
그리고 진짜 동쪽인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를 전체적으로 동인도라고 불렀음
스페인이 태평양 인디아스 루트를 통해서 동인도와 교역했을 때 모두 왕실이 주도해서 무역햇음
영국 무역은 왕실과 자본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동인도회사가 주도함
영국이 부유해질수 있었던 이유로 성장론자들은
가격혁명으로 인해 자본이 축적되고 그 자본으로 기술개발이 이루어져서 산업혁명이 성공했고
그런 것들이 잘 운영되도록 교통, 통신망도 만들어지며 금융시스템도 잘 정비됐다고 말했음
이 모든 것들이 불공정한 교역구조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음
스페인 갤리언 무역은 왕실이 주도했고 왕실이 힘이 빠지면서 통제력이 무너져 갤리언 무역도 쇠퇴하게 됨
영국과 네덜란드는 그걸 보면서 국가 혼자서 주도하기 보다는
스페인처럼 어디서 무지막지한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오는 게 아니니까 혼자 주도할 수 있는 재정적 역량도 없었으니
제국의 힘에 의존하는 것 보다는 왕실의 권력이 지원해주고 자본이 결합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런 교역 구조를 만들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동인도회사임
영국에서는 1600년에 네덜란드에서는 1602년에 동인도회사가 만들어짐
동인도회사는 유럽인들에게 귀했던 후추, 육두구, 중국의 비단, 인도의 면화 등 값비싼 상품을 교역하기 위한 회사
그래서 왕실은 동인도 회사에게 인도나 중국이나 일본 등 여러 나라를 상대로하는 무역의 독점권도 부여함
그리고 지역상관을 배치했음
이게 나중에 자국의 식민지 확장을 위한 전초 기지로 작용하게 됨
동인도회사 승인 배경
영국의 앨리자베스 1세는 해적들을 모은 해적함대가 있었는데
1588년에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일이 있었음
그 때 해적함대의 보나벤처호라는 해적선도 있었는데 선장이 제임스 랭커스타라는 사람이었음
이 사람이 그 공으로 인도로 가는 교역의 지위를 맡게 됨
첫번째 항해는 그 현지인들에게 물건을 사서 갖고 와서 파는 신사적이고 협상하는 교역을 운영했는데 대실패함
두번째는 그냥 해적질을 했음
향신료가 가득한 스페인의 무장상선을 빼앗아서 비싸게 팔다보니
랭커스터에게 투자한 사람들이 기뻐서 엘리자베스한테 동인도회사를 영구적으로 이렇게 운영하도록 합법화해달라 함
엘리자베스 여왕도 대왕제국을 확장할 군사비용이 필요해서 이를 충당하기 위해
제조법이라든지 상인에게 독점권을 주고 특허권을 주면서 그에 대한 이윤을 같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충당함
그래서 1600년 동인도회사가 탄생하게 됨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부터 특허를 받은 동인도회사 선박 네 척이 이듬해에 런던을 떠나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도착해서 103만 파운드가 넘는 후추를 싣고 옴
이 양은 육로로 하면 3000마리의 낙타가 실어서 날아야 하는 양임
그 당시 후추는 값비싼 향신료였음
냉장고랑 냉동실도 없어서 고기가 상하기 쉬웠고 그 잡내를 없애는 데에 좋았기 때문임
그리고 이런 향신료를 소비한다는 것을 과시하는 용으로 더 많은 소비가 이루어져서
부자나 귀족들은 음식을 후추로 떡칠해서 먹었다고 함
그렇게 수요가 많아서 동인도회사는 후추를 주력상품으로 해서 점점 수입하는 양이 많아짐
1603년 103만 파운드로 시작해서 1665년 225만 파운드, 1677년에는 813만 파운드까지 수입함
주식회사 도입
1600년 동인도회사 설립 당시에는 출항할 때마다 자금을 모집함
성공적으로 항해하고 다 팔면 수익이 많이 남는데 이를 투자 액수에 비례해서 그 자리에서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함
이익이 나면 이익을, 손해가 생기면 손해를 같이 분담하고 분담후 바로 해체함
다음 출항 시 또 투자자들이 모여서 투자함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안정성이라는 게 없었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주식회사 제도를 만들어냄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만들어지고 아시아에서 영국 동인도회사와 엄청 싸움
네덜란드는 이런 투자 방식으로 금융 시스템을 갖추는데 더 선진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영국 동인도회사도 모방하기 시작함
투자자들이 배가 들어오고 나의 이익이나 손해를 분담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투자금을 주식시장에서 팔아서 가져오거나 투자를 위해 주식을 사면 됐음
장기적으로는 손해지만 계속 유지하면 이익을 볼때 팔면 된다고 생각해서
자본이 항상 보존되어 있고, 경영인을 제외하고 일반 주주들은 일상에서 경영에 신경쓰지 않음
1657년부터 근대적인 주식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임
주력사업을 면직물로 전환
처음에는 후추, 육두구 이런 향신료로 시작했음
1657년에는 면직물로 주력사업이 전환됨
1600년대 중반에 면직물의 최고 퀄리티를 가진 나라는 인도였음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약 100년 전에 동인도회사가 활동할 당시에는 인도가 면직물 세계 최강이었음
면직물을 수입하는 것을 주력 사업으로 전환함
그 이유는 후추 사업에서 네덜란드한테 개발렸기 때문임
1800년대 산업혁명 이 후에는 면직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영국이 됐고
인도는 면직물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에서 영국한테 지게 됨
당시 인도에서 수입한 면직물 가게가 있었고,
신사 숙녀 모두 모자에서부터 장갑 옷 모두 동인도회사에서 수입한 면직물로 옷을 해입기 시작함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아시아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한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의 주요 무역루트를 비교할 거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영국 동인도회사보다 2년 늦게 설립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영국 동인도회사와 다르게 네덜란드 정부가 동인도회사에게 군사권을 줌
영국은 그 설립 당시에 군사권을 주지 않았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아시아 쪽에서 교역할 때 요새도 건설하고 군대도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거임
그래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영국함대나 포르투갈을 물리치고 동남아시아 말레이 제도를 장악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영국 동인도회사를 물리치고 향신료 교역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된 사건이 암보이나 사건임
암보이나 사건
스파이스(향신료) 군도라고 불렸던 현재 말레이시아 말라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스파이스 군도 중 암보이나 섬이 있었고 여기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처음 기반을 닦음
교통에 요지이며 향신료가 많이나서 영국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동시에 매력을 느껴서 싸우게 됨
영국 상인들이 일본 용병의 도움으로 네덜란드 암보이나 지방 총독을 암살하고
네덜란스 두비들을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됨
그 정보를 입수한 네덜란드 지방 총독이 일본인 용병 10명, 영국인 10명, 포르투갈인 1명을 처형함
그래서 영국사람들은 암보이나 학살이라고 말함
아무튼 암보이나 사건으로 영국이 완전히 패하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말레이제도에서 부상하기 시작함
이후 영국은 후추나 육두구 향신료 교역 1등 자리를 네덜란드에게 넘겨줌
영국 동인도회사가 향신료 교역에선느 축출됐지만 인도로 눈을 돌림
이미 1612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에 들어가서 교역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격퇴하고
인도의 무굴제국으로부터 무역특혜를 얻는 데 성공함
인도 남부지역에서 향신료를 사고, 면직물, 견직물 등을 판매해서 인도에서 기반을 잡아나감
활동범위도 페르시아, 동아시아, 중국 등까지 확장하게 됨
그래서 동인도 회사는 처음에 외국의 물품을 영국에 들여와서 비싸게 판매하여 수익을 냈지만
영국 산업혁명 이후에는 수입주력회사보다는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게 주 목표가 됨
그래서 영국 동인도회사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처럼 군사력을 갖게됐고
군사력을 기반으로 협박 압력을 통해 우리상품을 사라는 방식으로 자국의 상품을 아시아에 억지로 팔려고 노력함
면직물 수출입 변화
•1750년: 동인도회사가 아시아로부터 6,000miles에 해당하는 면직물 옷 수입
•1850년: 영국 공장이 아시아에 770,000miles에 해당하는 옷 수출
+ 더치커피
1616년에 네덜란드 상인이었던 부르커라는 사람이 있었음
예멘의 모카에서 커피 교역을 담당한 사람임
에티오피아에서 건너 온 커피를 처음으로 음료로 마든 건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임
예멘의 모카항에서 커피 무역독점권을 갖고 있었는데 부르커가 커피 묘목을 몰래 반입해서 키우는 데 성공함
40년 후에 1658년에 동남아시아로 가져가서 스리랑카, 남인도에 처음으로 커피 제배에 성공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커피묘목을 심기 시작했음
이렇게 수마트라 자하바섬에서 커피 플렌테이션이 시작됨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와 동남아시아를 교역하는데 엄청 긴항해가 필요했고
그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물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방법이었음
커피를 찬물에다가 천천히 내림
커피로 내린 물은 천천히 썩어서 항해를 위해 신선한 물을 마시고 싶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사람들이 그렇게 먹음
보통 커피보다 케피안이 훨씬 적고 오래 보관해서 마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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